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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아.” 츠키시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부 활동이 끝나고 소란스러운 부원들을 피해-늘 달고 다니던 야마구치마저-혼자 조용히 교문을 나서던 츠키시마는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쳇.”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와 눈이 마주치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막 카레 만두를 한입 베어 물은 참이었다. “넌 왜 혼자 여기 있어?” 원치 않게 나란히 걷게 되자 츠키시마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카게야마가 히나타처럼 다른 부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자신처럼 무리와 동떨어져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히나타나 다른 부원들을 피해 혼자 있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필시 손에 들려있는 카레 만두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다.” 카게야마는 우물거.. 더보기
완벽한 순간 토요일의 오후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교과서를 샤프로 마구 두들기던 카게야마는 유독 조용한 옆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지금이 말로만 듣던 키스 할 타이밍이라는 것이라고, 한 번도 입 맞춰본 적 없는 주제에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져갈 무렵 둘밖에 없는 고요한 집, 좁은 좌식 책상에 나란히 딱 붙어 앉은 키 큰 멀대들, 카게야마의 공부를 봐주다가 피곤했는지 등 뒤의 소파에 기대어 졸고 있는 츠키시마 케이. 그 순간 카게야마는 자신이 공부 중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대신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가슴께에서 이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안 어울리게 새근새근 아기처럼 졸고 있는 츠키시마의 얼굴이 바로 제 어깨 근처.. 더보기
여름 밤 탓 여름 밤 탓「…네, Aurora의 Half The World Away를 듣고 왔습니다. 오늘따라 얘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애인 있으신 분들은 잘 들어두세요. 벚꽃의 계절, 4월이 되어 날씨가 많이 풀렸죠? 소풍 가기에 완벽한 날씨네요.」완벽한 날씨는 무슨, 아직도 바깥은 쌀쌀했다. 벚꽃 잎에 취해 봄 차림으로 나갔다가는 감기에 걸려버리기 십상이었다. 아직도 동복에 겉옷까지 걸쳐 입은 학생들이 흔했다. 교정의 흩날리는 벚꽃이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고는 해도, 그 설레는 영화의 주인공은커녕 조연도 못 할 자신을 알고 있기에 봄이 그리 낭만적이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봄 내음에 취해 첫 눈에 반했다 말하고, 하루만 지나도 상해버릴 사랑고백을 해대고. 그런 짓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질색이어서, 벽에 걸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