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 토비오가 느닷없이 내 인생에 되돌아온 것은 초여름의 일이었다.
츠키시마, 너 사진 잘 찍는다며. 고교 졸업 후로는 연락 한 통 없던 녀석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는 하는 말이 그 모양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도 나도 추억에 잠겨 옛 일을 이야기하거나, 언제 한 번 보자는 인사치레를 주고 받을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기에 딱히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다만 놀랐을 뿐이었다. 지난 2년간의 공백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지는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사진이라니. 그와 내 사이의 거의 유일한 접점이었던 배구와는 심각하게 동떨어진 주제였기에 나는 자연히 얼떨떨한 기분이 되었다. 입 밖으로 내는 것은 태연을 가장한 까칠한 답변이었지만.
“취미로 가끔 찍을 뿐이야.”
“그러니까, 잘 찍느냐고.”
난데없이 전화를 해온 것도 모자라 사진을 잘 찍느냐는 다그침에 가까운 물음을 던지기까지 하니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피어오르는 묘한 들뜸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야만 했다.
“못 찍지는 않는데. 왜?”
“나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을까 싶어서.”
예전 같았으면 내가 왜, 하고 받아쳤겠지만, 지금에 와서까지 그렇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랬겠지만, 이상하게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대신에 언제, 하고 물었고, 그는 당장은 아닐 거라고 대답했다. 한…두 주쯤 있다가? 확신할 수 없다는 말투의 그에게 나는 갑자기 웬 사진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가 선수를 쳤다. 곧 다시 연락 줄 테니까, 자세한 건 그때 만나서 얘기할게. 그러고는 내가 으응, 떨떠름한 대답을 내자마자 끊는다, 한 마디만 남기고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제대로인건 여전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꺼진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카게야마는 한 달 후에야 다시 연락을 주었다. 네 ‘곧’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곧이냐고 습관적으로 내어 놓는 내 불평에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용건을 뱉었다. 너 도쿄에서 학교 다닌다며. 나도 도쿄 와 있으니까, 너네 학교 근처에서 한 번 보자. 너무나도 당당한 요구 같은 부탁에 나는 또 어정쩡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역시나 제멋대로였지만 묘하게 이전과는 다른 투였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마냥 급한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제대로 되받아치지 못하는 나도 예전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예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카게야마를 좋아했다. 첫사랑이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였는지는 모호하지만, 확실한 것은 학창 시절의 내가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품었었다는 것이다. 우스운 조합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받아쳐 줄 준비가 되어 있다. 나와 그는 단 한번도 그런 의미에서 ‘조합’이라든지, ‘우리’라든지 하는 말로 엮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짝사랑이었다.
지독한 열병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2학년의 츠키시마 케이는 동년의 남학생에게 제가 그러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차마 인정하지 못해 꼬박 반 년을 괴로워했다. 나는 이전보다도 더욱 심하게 그에게 비꼼 가득한 말들을 던지기 일수였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다가는 그런 내게 박박 화를 내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얼굴을 눈에 가득 담아내어 머릿속에 꼭꼭 쌓아 두었다가는, 집에 돌아와서 눈을 감고 그 암흑 속에 그것들을 펼쳐 내어 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화내는 모습보다도 웃는 모습이 더욱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면 나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볐다. 악몽을 꾼 것 마냥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츠키시마, 카게야마랑 무슨 일 있어?”
하다못해 당시 주장이었던 엔노시타 선배가 나를 따로 불러 내어 묻기까지 했다. 요즘 사이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둘이 혹시 싸운거야? 그렇게 묻는 선배에게 나는 억지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아무 일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치채지 못한 듯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너무 카게야마한테 그러지 마, 팀 분위기도 생각해야지. 다정한 듯 따끔한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릴 뻔 했지만 애써 몸을 곧게 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의할게요.
무엇을 주의한다는 것이었을까,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지끈대는 머리를 붙잡고 한참동안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그 감정을 더 이상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그가 내 꿈에 나온 후였다. 꿈 속의 나는 그에게 제법 사근사근했고, 그는 단 한번도 본 적 없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 바람이 불었다. 흰 꽃잎 같은 것이 온통 흩날리는 풍경 속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그의 얼굴뿐이었다. 그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꽃잎의 폭풍 사이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있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등 뒤는 이상하게도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나는 그의 입 모양이 무어라 말하고 있었는지 기억해내고 말았다.
좋아해.
젠장. 나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팔을 눈가에 얹었다. 또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투명하게 흐르려는 자각의 증거를 막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팔은 점점, 점점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나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꼭 지금과 같은 초여름의 일이었다.
그토록 억누르던 감정을 온전히 자각한 후에도 겉으로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를 대하는 것을 누그러뜨렸다. 이전처럼 간혹 가다 서로 으르렁대지만, 또 꽤나 팀워크를 보여주는 그런 사이로 돌아간 나와 그에게 모두들 안심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태연을 가장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열병을 숨기었다.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졸업할 때까지 꼬박 일 년 반을 더 앓았다.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고백 같은 것은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특히 내가 카게야마를 좋아하는 것은 애시당초에 이어지지 못할 것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딱히 고백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 실은 두려웠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가장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고백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작정했기에 고백하지 않았고,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고백할 수 없었다.
끓는 것 같기도, 차갑게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한 그 기묘한 감정을 안은 채로 나는 졸업을 했다. 졸업식 날, 배구부 3학년 네 사람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든 것은 우리 형이었다. 꽃다발을 어정쩡하게 품에 안고는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히나타와 야마구치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다. 그리고 카게야마, 내 지독한 짝사랑의 주인공인 카게야마는 입술을 꾸욱 깨물고 있었다. 붉어진 눈가에 맺힌 투명한 눈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나는 그 모습에 잠시 멍하니 홀려버리고 말았다.
예뻤다. 짜증이 날 정도로 예뻤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상기할수록 더욱 예뻐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눈을 느리게 끔벅였다.
“케이, 여기 봐야지!”
형의 외침에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찍는다, 하나, 둘 셋! 찰칵, 셔터 소리가 들렸다. 잘 나왔네. 모니터에 비친 사진을 보며 형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괜히 품 안의 꽃다발을 고쳐 안았다.
그 다음은 사실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야마구치는 부모님이 오셔서 먼저 가 보겠다며 연락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뜨고, 히나타는 여동생에게 마지막으로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가버렸던 것 같다. 단 둘이 자리에 남은 카게야마와 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케이, 우리도 이만 가 보자. 형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
울음이 잔뜩 묻은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잠시 멈춰세웠다. 나는 뒤로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가에 잔뜩 어려 있던 눈물이 어느새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한 손을 들어 손등으로 볼을 훔쳤다. 그가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 차마 다 알 수도 없었지만, 문득 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그러나 나는 애써 꾸욱 참으며 대신 품 안을 뒤적였다. 그러고는 흰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울지 마.”
고민 끝에 카게야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넸다. 처음이었다. 그는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빨갛게 물든 눈가가 안타까웠다. 그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그를 안아 위로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나는 그가 손수건을 집어 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다가,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돌려줄 필요는 없어.”
…안녕. 마지막 인사를 뱉고 나는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볼을 에이는 찬 바람에 눈가에 고인 것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의 앞에서 울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눈을 박박 닦아내었다.
나중에 형의 카메라를 빌려 졸업식 사진을 확인했다. 노트북에 카메라를 연결해 사진을 하나 하나 넘기며 마음에 드는 것들만 골라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네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역시나 히나타와 야마구치의 표정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맨 오른쪽에 선 카게야마를 보았다. 울음을 참는 것이 여실한 표정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머리에 열이 올라 지끈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 표정을 확인하며, 나는 잠시 숨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고 그렇게나 생각했건만, 내 표정에 담긴 감정은 카게야마의 것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뒤섞여 어지러웠다. 들켰을까? 주어가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이내 다시 침착을 되찾은 나는 찬찬히 생각했다. 들켰을 리 없다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 같았다.
잘 나오긴 무슨. 나는 괜히 형을 원망하며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였다. 신입생들을 끌어들이려 홍보전을 벌이는 동아리들 사이에서 나는 사진 동아리에 끌려가듯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봤자 아마추어들이 모여 간혹 출사를 나가는 정도의 동아리였지만, 시간을 많이 뺏지 않다 보니 의외로 나와 잘 맞았다. 한밤중의 강가에서 야경을 찍기도, 한낮의 공원에서 식물을 찍기도 하며 나는 그럭저럭 괜찮게 동아리 생활을 계속했다. 적당히 즐기는 마음도 생겼다.
2학년의 봄, 학기 첫 출사를 나가던 날에 새로 들어온 후배 녀석이 내게 질문을 던졌었다. 선배, 인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녀석은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던 성 싶지만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제껏 인물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건 저 선배가 가장 잘 찍으니 가서 물어봐, 대강 대답을 해 주고 나는 멍하니 풍경을 응시했다. 흰 꽃잎이 바람에 푸스스 흩날리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는 그날 제대로 된 사진을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인물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 것은 그것이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의식에 박혀 있는 무엇인지 모를 가시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대었다. 창틈으로 새는 달빛을 멍하니 바라보다 불을 켜고 노트북을 켰다. 괜히 이것저것 둘러보고 검색하다가 문득 한참을 잊고 있던, 잊으려고 노력하던 폴더를 떠올렸다. 나는 점 하나만 찍힌 폴더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느릿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폴더를 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의 사진이었다. 사진을 골라내던 날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노트북 깊은 곳 어딘가에 폴더를 처박아두었던 것처럼 마음 한 구석에 처박아놓고 싶었던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꾸역꾸역 꺼내 들여다보았다. 차근차근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겨보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손을 멈추었다. 우스운 일이기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카게야마와 나의 얼굴에 잔뜩 서려있는, 같은 곳으로 수렴하는 감정을 타인의 것처럼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왜 인물 사진을 찍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노골적인 객관성을 덧씌워 박제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감정을 한 곳에 고정시켜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게 되는 것은 떨떠름한 것을 넘어 당황스러움과 약간의 불쾌함을 일으켰고 나는 그래서 타인에게도 그런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 그가 그것을 짐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사진을 찍으며 그 짐을 나눠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겁이 났던 것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그 사진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거기에서 그 잔인한 사실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유를 알게 되어 조금 기뻤고 동시에 슬펐으며 아주 오래 아팠다. 지우개를 들어 츠키시마 케이라는 이름 안에 진하게 박힌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을 지워내고 싶은 밤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하고도 열흘이 지난 후에 그에게서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그와 나는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의외로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야, 츠키시마! 손을 붕붕 흔드는 그에게 나는 조금 짜증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가갔지만 실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조용히 좀 하라며 핀잔을 주는 말에도 나만이 눈치챘을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오랜만에 첫사랑의 상대를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흥분되는 일이었고 나는 카게야마가 눈치가 없는 녀석이라는 데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내 기분을 그가 눈치채는 것은 그닥 달갑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 사진 좀 부탁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주문한 음료를 몇 모금 입에 대지도 않은 채로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내 잔을 홀짝였다. 그는 입을 살짝 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나는 조금 답답해진 마음에 빠르게 음료를 목으로 넘겼다. 뜨뜻하고 단 액체가 느릿하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헛기침을 했다. 카게야마는 눈치채지 못한 듯 입술만 달싹였다. 금방이라도 그가 입술을 세게 깨물어 피를 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조금 급하게 입을 열었다.
“무슨 사진?”
입을 열자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까의 조급한 답답함을 씻어 내렸다. 그가 무언가 말하면 무언가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 손바닥을 허벅지에 닦아내었다. 손의 땀만큼 마음의 불안이 축축했다. 나는 가만히 열리는 그의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흰 컵을 마른 손으로 매만지며 눈을 내리깔았다.
“마지막 사진.”
그의 입에서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에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무엇의 마지막이냐는 말도 채 꺼내지 못한 채 나는 멍청하게 입을 조금 벌렸다. 아무런 말도 뱉을 수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오직 천천히 열리는 그의 입술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불길한 기운이 윙윙대며 세상을 온통 울렸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나, 죽는대.”
잔인하게도.
공간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유리잔이 부서지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한순간에 깨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애써 내 앞의 컵을 잡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소리야, 말을 하려고 했지만 혀가 굳어버린 듯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얼어붙고 먹먹하게 마비된 것을 떨치려 입술을 짓씹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무슨, 소리야. 그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컵을 입에 대었다. 꼴깍이며 음료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열린 입술에서는 차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 흘렀다.
“말 그대로야. 나 죽는대.”
불치병이야. 기껏해야 두 달이라고 병원에서 그러긴 하던데, 그때까지 살 수 있다고 확신은 못 한대. 차분하게 이어가는 말에는 현실감이 없었다. 무거운 것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한참을 정적 속에 앉아 있다가, 나는 묻기도 두려운 말을 꺼냈다. 어떤 답이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무서운 말이었고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알았고, 앓았냐는 물음은 제대로 된 형태를 띠지 못한 채로 튀어나갔지만 그는 용케 알아듣고 대답을 꺼내 내 마음에 가져다 박아넣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좀 전에.”
칼날같은 한 단어 한 단어에 날카롭게 베이고 찔린 심장에서 검붉은 낙망이 줄줄 흘렀다. 나는 그제야 그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확실하게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고 그가 왜 지난 시간 동안 단 한번도 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더이상 배구를 할 수 없게 된 아픈 몸으로, 그에게는 무엇보다 찬란했을 고교 시절의 배구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큰 고통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를 찾아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겠지. 아니 어쩌면, 어쩌면…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을 털어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끝끝내 뇌리에 박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그에게 배구가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사랑했던 카게야마 토비오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을까 봐 두려워졌다. 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온갖 잡념들의 스위치를 찾지 못해 멍한 상태로 계속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었다. 말들이 음절 단위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제대로 된 사진이 별로 없어서, 사진을 좀 찍어줬으면 하는데.”
내가…죽기 전에. 그제야 조금 힘겨움이 묻어나는 말투에 심장은 혈액 대신 절망을 펌프질했다. 차갑게 식은 손끝까지 흘러들어오는 감정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들리는 말소리는 그런 내게 찬물을 후욱 끼얹었다.
“…미안. 너무 갑작스럽지.”
검푸른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눈에 내 눈을 맞추다가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내게, 그리고 왜 하필 네가. 수십, 수백 개의 질문들이 순식간에 생각을 가득 메웠지만 나는 물을 수도 없고 묻고 싶지도 않아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확실히 마르고 초췌해진 인상이었다. 원래도 살집이 없던 얼굴은 이제 광대뼈가 선명히 드러났고, 컵을 잡은 손목에도 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마음 놓고 그를 위해 절망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고 부끄러웠다.
나는 결국 그에게 사진을 찍어 주기로 약속하고 자리를 떴다.
다시 그를 만난 날은 하늘이 맑았고 조금 더웠다.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손차양을 하고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았다. 햇볕이 강했지만 아직은 간혹 바람이 불어왔다. 카메라를 잡은 손이 살짝 부들거렸다. 첫 인물 사진의 피사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첫사랑이라니, 우스우면서도 떨렸으며 서글펐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차곡차곡 접어 넣고는 그에게 미리 보아 둔 장소를 안내했다. 들꽃과 푸른 잔디와 우거진 나무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그 나무 아래 서 봐.”
그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나는 뷰파인더 너머로 그를 바라보며 포즈를 주문했다. 허리 좀 더 펴봐. 고개 좀 들고. 팔로 거기 짚어봐. 지시를 내리면서도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그가 원하는 대로 잘 찍고 있는 걸까, 애초에 그를 찍는 것이 옳은 일이기는 할까. 혼란스러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와 나는 열댓 장의 사진을 찍고 반쯤 기진맥진해 잔디밭에 널브러지듯 앉았다. 사진 찍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구나. 카게야마가 나직하게 뱉는 말에 나는 괜히 가책을 받은 기분이 되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고 눈을 감으며 생각을 식혔다.
그리고 문득 사진을 갓 시작했던 1학년 때 동아리 선배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완벽한 순간은 마지막에 와.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었다. 뭐, 늦은 시간에 사진이 잘 나온다, 이런 말인가요? 선배는 푸스스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황혼이 질 때쯤 찍은 사진이 예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생각해 봐. 하루 종일 사진을 찍다가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더 익기 마련이잖아? 그래서 촬영을 마치고 들어가려고 마음먹을 때쯤 사진이 제일 잘 나오더라고, 나는.
“뭐든 시작할 땐 서툴기 마련이야. 가장 완벽한 순간은 그래서 마지막에야 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내버려둔 채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에 순간 졸업식 날의 그가 겹쳐 보였다. 나는 홀린 것처럼 카메라를 들어 그의 옆모습을 찍었다. 찰칵, 소리에 그가 그제야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셔터를 눌렀다. 찰칵.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멍하게 풀린 눈동자에서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검푸른 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물을 용기를 내었다. 카메라를 내리지 않은 채로 입술을 떼었다.
“왜 나였어?”
왜 하필 나한테 찾아와서 사진을 부탁한거야? 묻는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떨구었다. 왜 하필 너였냐고? 반문하는 목소리가 푸르게 떨렸다. 잠시 고민하듯 입술을 깨무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찰칵, 느리게 눌린 셔터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널 좋아했으니까.”
뷰파인더 너머의 카게야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나 너 좋아했어. 너 다시 보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안 나더라고.”
나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얼마 전에 어쩌다 야마구치랑 연락이 닿았는데, 네가 사진 찍는다고 해서.”
사진은 핑계고, 너 보러 온거야.
나는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붙잡지도 못하고 카게야마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눈가가 울음을 참는 듯 붉어져 있었다. 살짝 고인 눈물이 느릿하게 주르륵 흐르자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손을 뻗어 눈가를 눌러 닦는 손길에 그가 눈을 감았다. 그의 눈물로 내 손이 젖어들어갔다. 얼굴에 번진 눈물을 다 닦아낸 나는 그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등을 토닥이는 손이 떨리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고 있었다.
“울지 마.”
나도, 나도 너 좋아했어. …보고 싶었어. 처음으로 내는 진심에 카게야마는 울음 섞인 소리로 웃었다. 바보 같았네, 서로 좋아하면서 서로 모르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의 표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계속 중얼거렸다. 꼭 졸업식 날 같다. 나 그때도 너 앞에서 울었잖아. 너는 울지 말라고 하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에 턱을 대었다. 그 때도 이렇게 눈물 닦아주면서 안아주고 싶었는데. 첫사랑을 앓던 소년의 마음을 굳이 털어놓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그로부터 꼭 한 달을 더 살았다. 나는 울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나는 그제껏 차마 열어보지 못했던 그 날의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스무 장도 채 되지 않는 사진들은 나무 밑에 어색하게 서 있는 카게야마로 시작했다. 나는 한 장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순간을 박제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던 나였지만, 그를 나만의 공간에 고정시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느릿느릿 사진을 넘겨 보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그를 잃을 까 두려워했던 것을 기억했고 그것이 부질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진 속의 그는 고등학교 시절의 그가 아니었지만 동시에 맞았다.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가 닿는 시선에서부터, 입술을 삐죽대는 습관과 날카로운 눈매까지 그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찍은 세 장의 사진 중 첫 장이 나왔다.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시선을 돌린 카게야마, 멍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카게야마, 그리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카게야마. 나는 그날의 그와 나를 떠올리자 막혀오는 숨에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그와 내가 맞닿았던 마음을 고백하던 그 순간이 어쩌면 츠키시마 케이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유일하게 ‘우리’라는 말로 엮일 수 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순간은 마지막에 와, 선배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나는 화면 안의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때늦은 눈물이 고였다. 눈 앞이 서서히 뿌옇게 흐려졌다.
완벽한 순간은, 잔인하게도 마지막에 온다.
떠나 보낼 수밖에 없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스위트피,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