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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르

Der Schwarzwald

Der Schwarzwald

 

화가 AU

 

* 미술 대학생이나 입시과정은 미국 대학의 fine arts 전공을 각색해서 쓴거에 대해 양해 부탁드립니다.

 

 

길을 걷다가 붙잡혀 만난 그 순간부터 화근이라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큰 소리가 울렁차게 들려왔다. 저기요, 잠시만요. 뒤에서 다급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목이 우악스럽게 잡히는 감촉이 불쾌했다. 츠키시마는 신경질적으로 쓰고 있던 헤드폰을 한 손으로 빼내고 그를 잡고 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키가 제법 크고 앳된 얼굴을 가진 대학생은 험악한 시선으로 츠키시마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단숨에 불쾌하게 만드는 능력이 타고난 청년이었다. 츠키시마는 혀를 작게 차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거 좀 놓고 말해요.”

 

그래야 내가 도망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청년은 말을 듣지 않았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츠키시마는 인상을 쓰면서 재차 물었다.

 

이봐요, 말 못 들었어요?”

, 저기요. 모델…”

 

청년은 드디어 입을 열며 말을 더듬었다

 

모델 좀 해주세요.”

 

무어라 더 반박하기 전에 츠키시마는 어느새 청년에게 끌러가고 있었다. 둥그란 청년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짜증이 치솟았다. 그 남자 어깨에 걸쳐진 카메라 가방. 밤을 매일같이 설치다 자연히 탁해진 눈. 후줄근한 셔츠와 낡은 청바지. 아주 익숙한 풍경이여서 옛 향수에 잠시나마 잠긴게 한심했다. 질질 끄는 손가락은 단단하게 그를 쥐고 있어서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생의 이름은 카게야마 토비오라고 소개하고 그는 이번에 졸업 작품으로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미대생이라니, 이런 불경기에? 츠키시마는 비웃었지만 그런 반응에는 익숙했는지 카게야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방 안에 난잡하게 놓여진 물품들은 흔히 화실에서 볼 수 있는 캔버스나 페이트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어설픈 소개와 이번에 제출하고 싶은 졸업 전시작을 대충 흘겨 넘겼다. 어짜피 학생이 만지작 거리는 미술 세계라곤 다 거기서 거기, 볼품없는 성향을 내비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얼핏 듣고 보니 훤칠한 키와 날카로운 이목구비 때문에 단숨에 시선을 끌었다고 밝혔다. 이야, 이제 보니 얼굴 밝히는 작가님이셨네, 츠키시마는 단숨에 받아쳤다. 카게야마가 내어준 커피를 받으면서 그를 향해 냉소적인 웃음을 보이자 카게야마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칠 줄 몰라 인상을 찌푸리기만 했다. 무언가 대꾸를 하고 싶은데 일단은 부탁하는 입장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꾸를 하기 위해서 입을 열다 이내 다시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돌렸다. 성격이 평소에 더러울거라고 추측하며 츠키시마는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면 왜 사진기를 들고 다니실까. 사진 전공도 했나봐?”

걸어다니가다 풍경을 찍는걸 좋아해서요.”

 

편하게 말을 놓은 츠키시마가 영 불편한 기색이였지만 그것 또한 지적하지 않았다. 예술을 위해 참 많은 걸 희생하시네, 츠키시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물화 스케치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충 둘러본 그의 널부러진 작품들 속에 그려진 풍경들은 허접하다고 비웃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였다.

 

그래, 그럼. 모델비는 받고 해줄게.”

“…???!!!! 정말입니까.”

 

그렇다고 저렇게 승낙하자 정말 기쁘듯이 그를 바라보는 저 어린 눈도 부담스러웠다. 그래, 츠키시마는 짧게 대답하고선 주말에만 들리겠다고 합의를 봤다. 화실에 계속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화실을 들락거리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카게야마는 인체에 대한 인식이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그는 그 전에 수많은 풍경화를 그렸다고 말했다. 몇 작을 보여주자 츠키시마는 드물게 할 말을 잃고 한동안 그의 스케치와 완성품을 쳐다보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츠키시마의 반응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작게 웃었다. 츠키시마씨라면 좋아할 것만 같았어요. 꼬맹이가 어디서 건방지게, 그런 대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그 말이 맞았다. 심지어 탐사를 간다고 찍은 풍경 사진들도 보여주더니 그 사진들 또한 재수없게도 죄다 마음에 들었다. 완벽하게 그 사물을 담아낸 사진들은 결코 아니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서가 아니었다. 모든 사진 속은 텅 비어있는 공허함, 무채색을 내보이며 그 허공을 매울 수 없는 절망감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뭘 찍으려 한거야, 츠키시마는 물어봤고 대답은 예상한 대로 단순했다. . 빛을 잡으려 했어요. 카게야마는 쓸쓸하게 말하며 인화된 사진 몇 장들을 손으로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런 카게야마는 인물화가 서툰게 당연했다. 빈 공간만을 추구하고 빛을 찾던 사람이 어떻게 그 같은 공간에 사람을 담아낼 수 있을까. 카게야마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것은 그의 작품 몇 개만 봐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말주변도 없고 과묵하기 짝이 없는 카게야마는 츠키시마의 시선마저 피하는 일이 허다했다. 둘은 대화 없이 마주보며 앉았고 첫 만남의 절박함과 애절함은 그 후에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오로지 앞에 놓여진 캔버스에만 집중할 뿐이였고 그렇게 몰두하는 카게야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까다로웠고 그의 요구조건 또한 정확했다. 장시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았으며 시간이 끝나면 돈을 손에 쥐여주고 인사 또한 건네는게 서툰 아이였다. 오로지 그의 시선은 츠키시마의 인영, 혹은 곧 츠키시마가 담겨질 캔버스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굳이 인물화를 그릴 필요는 없잖아. 영 그쪽에 소질이 없는거 같은데.”

그런가요.”

 

그 날도 카게야마는 애매하게 대답을 하고선 츠키시마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한 손에는 연필을 쥐면서 밑그림을 그릴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림에도 계급이 있으니까. 그중에서는 인물화는 사물화 다음으로 가장 하찮다고 배웠을 텐데.”

도대체 어느 시대를 논하시는거에요.”

풍경화는 그토록 광활하게 그렸으면서, 왜 굳이 이런 짓까지 해야되는거냐고.”

그럼 제가 풍경화를 그리길 바라시는 건가요?”

 

이해가 안되는 듯 카게야마가 물어오자 츠키시마는 짜증나는 말투로 다소 날카롭게 말했다.

 

그냥 쓸데 없다는거지. 사람도 잘 알지도 못하는 독재자 같이 생긴 얘가 어딜 봐서 사람을 그릴 수 있다는거야.”

 

화가 났지만 왜 속에 이렇게나 들끓는지 이해가 안갔다. 그저 학생일 뿐이다. 그런데 저렇게 무언가에 열정을 부어서 어떤 대단한 작품을 만들지, 그리고 어떤 좌절감이 그에게 올지, 츠키시마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알기도 싫었다. 쓸데없이 비좁은 화실에 들락거리는 날들이 늘어나자 불현듯 옛 생각들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카게야마는 미술에 날카롭게 지적하는 츠키시마의 의견들을 이상하게 받아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마냥 반박도 하고 수긍을 하는 그 모습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을 아는 건 아니지만, 츠키시마는 일부러 심술궂게 말하면 카게야마는 거기에 어설프게 웃었다. 츠키시마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전에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을 사랑해서도, 사람을 갈구해도 아니였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츠키시마는 인물들을 섭외하고 끊임없이 찍고 결국 전시까지 한 경력을 가졌고 그러한 과거를 굳이 들추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사진 속에서 그토록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그 순간에 빨리 포기를 했다. 사회에 나와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카메라는 방 한구석에 먼지가 쌓이도록 버려두었다. 그리고 예술을 멸시하게 되었고 그런에서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쉽사리 부정했다. 결국 그들은 허상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게야마를 보면 그런 심심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래서 내가 더 이상 예술을 안해. 무언가를 창조하기 시작하면 사소한 것들에 감정을 주기 시작하고 구질구질함에 얽히게 되고 말아. 그리고 결국 그 쓴 패배감을 맛보기 싫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삶이 너무 하찮고 가여웠다.

 

홧홧한 열기가 뒤감는 그 화실 속에서 츠키시마는 마른세수를 했다. 오랜 시간 앉아 있느니 피곤했고 장시간 움직이지 않은 몸이 뻐근했다. 잠시 쉬자, 츠키시마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게야마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비죽 입을 내밀면서 그가 그리고 있던 캔버스 앞을 노려보기만 했다. 둘의 사이에는 알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학교 1학년때 화실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어요.”

 

카게야마는 손을 만지작 거리면서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모델을 지시한 경험도 없지?”

, 인물화를 그린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졸업 작품을 굳이 나를 그리겠다는거야. 너무 무모하지 않아?”

 

츠키시마는 벽에 걸린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두운 인영 속에서 곧게 뻗은 나무들의 형태 속에 미미하게 새어나온 빛의 환상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이었다.

 

차라리 이런걸 제출하던가.”

 

그게 네 특기라며. 카게야마는 그런 츠키시마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츠키시마가 손짓하는 사진들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

.

.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시대는 지났단다. 예전에 교수님이 그에게 에곤쉴레의 그림을 보여주며 해준 말이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이 세상에서 존재할까, 완벽한 미는 이미 인류가 하얗게 불태워버린 잔해물이야. 왜 그 많고 많은 화가들 중에 그토록 선과 인간의 추악함을 추구하는 화가를 교수님이 보여주었을까, 그때 당시 카게야마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완벽한 미를 찾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그리는 솜씨도 월등해서 그리는 것 이외에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새하얀 종이에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즐거움에 빠져 그림들을 수도 없이 그려나갔다. 가늘고 굵은 선부터 시작해 주변 사물을 그리다 결국 앞마당으로 뛰쳐나와 나무와 꽃, 그리고 그런 자연속에 스며드는 햇빛을 보며 명암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그러한 카게야마를 보고 선생님들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너는 사람을 그리지 않니.

 

카게야마는 도화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람에게서는 제가 원하는 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했고 그들이 전부 아름다울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본질을 찾아서 완벽하게 한 작품에 담을 많큼 카게야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오로지 움직이지 않은 사물, 그리고 잡히지 않은 형태, 그런 것들로 카게야마는 그의 그림들을 가득 그려나갔다.

 

그러는 그에게 대학교의 화실은 고역이었다. 동기들과 같이 부둥켜 여러 작품들을 그리기를 꺼려했고, 동기들의 실체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을 느꼈다. 첫 수업 시간에 그는 옆에 앉아 있는 동기의 모습을 그려 나가야만 했다. 그릴 수 없습니다. 카게야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동기생들은 그러한 그를 처음에 의아한 눈빛으로, 곧 경멸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림은 점점 엉망이 되어가자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은 온전하고, 완벽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여러 흑백 피사체를 찍으며 동기들과 어울리기를 거부했다. 동기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그림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네 그림은 완벽하지만 감흥이 없어. 마치 복제품을 보는 기분이 들어. 들을 수 있는 모든 모욕을 다 들으면서도 카게야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의 작품들은 어눌하고 어설펐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그만이 완벽성을 추구했고, 오로지 그것만 붙잡을 수 있다면 된거라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네가 무엇을 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구나.

 

교수님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에게 에곤쉴레를 보여주었다. 카게야마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교수님을 마주보며 감흥없이 옛 화가들의 그림들을 흘겨넘겼다. 그런 카게야마를 보면서 교수님은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직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찾지 못하는 듯 하구나. 머리를 식힐 겸 교수님은 독일에 한 번 가보라고 권했다. 독일에 검은 숲이라는 곳이 있단다. 거기에서 네가 원하는 걸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구나. 교수님은 흐트러진 카게야마의 사진을 보면서 조용히 웃었다. 사진에 온전한 암흑을 담고 싶다면, 거기만큼 좋은 곳은 없겠지. 거기에서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베를린에 도착해서 곧바로 교수님 지인의 도움으로 회색빛이 바래진 도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중간 지점의 어느 작은 마을에 세워달라 부탁을 해서 차를 빌려 또 다시 검은 숲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정착해서 사진기를 꺼내고 장비를 꺼내 죄다 차 안에다 난잡하게 펼쳐놓았다. 해는 저무는 풍경, 그것이 그가 찍은 첫 사진이었다.

 

검은 숲에서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연속 사진만 찍고 지냈다. 우거진 숲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어슴푸레 들어오는 축축한 흙바닥, 혹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나뭇잎들의 그림자. 모든걸 카메라로 담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 주변의 세세한 모든 것 까지 사진 속에 거침없이 담아버리고 싶었다. 해가 뜨는 걸 보기 위해서 밤날을 새어가면서 밥을 커피와 컵라면으로 먹고 살아서 온몸이 허기지고 피곤했지만 그 곳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거기를 꼬박 일주일동안 지냈고 하루하루 피곤이 차곡차곡 누적 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 그 시커먼 숲은 와스스 울고 사방은 구슬피 부르짖는 야생 동물의 소리만 들려오는 그 정적 가운데서 의지할 것이라곤 카메라밖에 없었다는 그 심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고독했다. 누군가 그 길가에 멈출만도 했을텐데 그때 내내 홀로 그 수풀 속에서 쪼그리며 짙은 풀내와 썩은 흙내를 맡으며 어둠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외딴 곳에서 지내는 고립감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외롭고 서글펐다. 마지막 날 사진들을 인화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슬프다고 표현하기에는 그 감정이 참으로 공허했다. 그러는 와중 사진에 혹시나도 눈물이 떨어져 사진이 망가질까봐 황급히 닦아 버리는 자신의 손바닥이 참으로 무의미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화실에서 그렇게 날카로운 비난을 받았을때도 덤덤하게 제 동기들을 바라보면서 퇴장했는데, 홀로 낯선 땅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그 적막감을 그제서야 실감을 했는지, 한 번 울기 시작하니 멈출 수 없었다. 어디선가 푸드덕,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눈물을 훔치며 서서히 마른 사진 한 장을 들춰 올렸다.

 

우거진 숲에 스며드는 한 빛줄기의 찬란함. 그것은 너무나도 하찮고 보잘것 없었다.

 

.

.

.

 

카게야마는 그의 사진을 바라보며 구질구질한 옛 기억들을 굳이 츠키시마에게 떠벌거리지 않았다. 그 뒤로 검은 숲을 빠져 나와 춥고 황폐한 독일 땅을 돌아다녔다. 그 어떤 것도 사진에 담을 수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 않은 것들로만 가득찼다. 하지만 홀로 고립된 숲의 아름다움을 갈구할 바에, 불완전한 미를 찾아 나서기로 카게야마는 결심했다. 이른 해지녘을 바라보며 교수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학교로 다시 돌아와 마지막 작으로는 인물화를 그리겠노라고 말했다. 그 모든 정보는 이 낯선 남자 앞에서 굳이 고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 대신 해줄 말은 따로 있었다. 츠키시마를 바라보지 않고선 말을 더듬어 나갔다.

 

사실, 츠키시마씨 사진 전시회를 가본적이 있어요.”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츠키시마는 그의 말에 놀란 눈치는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홀가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머리에 쥐면서 낮게 큭큭거렸다. 그 광경이 괴이했지만 카게야마는 그저 얌전하게 기다렸다. 조용히 츠키시마는 웃음을 거두고 퍽이나 우스꽝스러운 말을 했다는 식으로 카게야마에게 비꼬는 태도로 물었다.

 

그래. 어쩐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네 그림들을 흑평하면서 그 성격에 얌전히 있는게 이상하다 했지. 그래서, 내 작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어?”

 

츠키시마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이죽거렸다. 답이야 뻔했다. 그는 사진 속에서 고립을 추구했다. 교수님도, 그의 동기생들도, 죄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고독한 선과 음영이 참으로 인상적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모든 사진에는 단 한 명의 길쭉한 남자게 하얀 도화지 안에서 카메라속으로 시선을 머물렸다. 남자의 몸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몸의 윤곽이 또렷하게 비추었다. 네 사진은 마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보는 것만 같군. 그 당시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사진을 찍을때 온통 츠키시마 아키테루, 죽은 그의 형의 사진으로 도배를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는 형이랑 엇비슷하게 생긴 모델들을 고용하고 작품을 죄다 형의 이름명으로 표기했다.

 

츠키시마 아키테루 1

츠키시마 아키테루 2

츠키시마 아키테루 3

츠키시마 아키테루 4

츠키시마 아키테루 5

츠키시마 아키테루 6

 

야마구치가 말한 적이 있었다. 츳키, 저 표기가 다 무슨 묘지명 같아. 우스갯소리로 말을 꺼내고선 먼저 기겁하는 것도 그였다. 미안 츳키, 그런 뜻은 아니였어. 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여서 화를 내지 않았다. 차갑고 흰 벽에 전시된 그의 사진들은 죽은 자의 이름을 빽빽하게 새겨 놓은 그 방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어야 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었던 작은 규모의 전시회는 시종일관 무표정인 젊은 남자들이 편하게 뻗어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들만 담아놓았다. 이미 죽은 사람을 담을 수 없어 츠키시마는 아키테루의 허상을 쫓기 급급했다. 하지만 카메라로는 아키테루의 소리와 감촉을 담을 수 없었다. 세계와 츠키시마 사이에는 날이 서 있었고 그 적막함 속에서 츠키시마는 비로소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츠키시마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랑스러운 형의 모습. 그것을 사람들은 고독하다 불렀다.

 

카게야마는 어려운 표정으로 츠키시마를 쳐다볼 뿐이었다. 입을 달싹거리며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하며 천천히 답했다.

 

“…제가 추구하던 인물화가.”

 

카게야마는 조심스레 말했다.

 

츠키시마씨가 표현해주신 아키테루 작품들이, 제가 원했던 인물화였어요.”

그러니까, ?”

“…아름다워서. 어둠과 빛이 맞물린 사람의 몸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그 순간을, 담고 싶었어요.”

 

거기에 츠키시마는 말문이 막혔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카게야마의 적막한 숲들의 사진을 다시금 쳐다보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암흑 속에 그는 솟구치는 태양을 가두기 위해 서텨를 연속으로 쉴새없이 눌렀을 것이다. 츠키시마 또한 생각해보면 별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키테루가 어느 날 사라진 세상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고 그 의미를 대립된 두 명암에 보존하고 싶었다. 칠흑으로 번진 츠키시마 케이의 세상에 빛을 주고 싶었다. 츠키시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사진 작가에게는 완벽한 순간이라는 게 있잖아? 거기에서 인생의 피사체를 만들지만, 난 그걸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그만둔거야.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쓸데없는 짓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고 사진이 결국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거지. 츠키시마는 굳이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츠키시마를 바라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카게야마 답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둘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 사진들을 보고 할 말은 더 없어? 츠키시마는 날카로운 비평을 기대하며 짓궂게 물었지만 카게야마는 일관된 대답으로 아름답다고만 말했다. 거기에 말문이 막혀 결국 츠키시마는 그 날 화실에서 내내 말 없이 집중하는 카게야마를 응시했다. 시간이 다 되자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카게야마였다.

 

이번에 제 작품이 끝나면, 저도 해드리겠습니다.”

뭘 말이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자 카게야마는 불만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모델이요.”

“…?”

다시 사진을, 찍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걸작으로 널 써보라고?”

 

이야, 정말 왕같은 생각을 가졌네. 츠키시마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츠키시마를 보면서 점점 더 얼굴이 구겨져 갔지만 꿋꿋하게 카게야마는 말을 이어나갔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면, 전에는 안보인 것들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왕님께서 친히 내리신 결론이야?”

“…비꼬지 말아주세요.”

널 가지고 뭘 찍으라는 건데.”

 

츠키시마는 웃음을 거두었지만 눈은 여전히 가늘게 휘며 팔짱을 꼈다.

 

글쎄요.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시기에는…”

 

카게야마는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꽤 고심하는 듯 보였다.

 

“…원하시는 걸 담으시지 못하셨으니, 찾으실때까지.”

 

언젠가 그 순간이 올 거야. 예전에 아키테루 또한 그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언젠가 네가 절실하게 갈구한 그 완벽한 피사체가, 네 손 안에 고히 담겨질 날이 있겠지. 그 당시 심심풀이로 사진을 찍은 케이에게 건네준 유언이었다. 그 순간이 온다면, 그제서야 네가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될거야.

 

카게야마가 그를 향해 보내주는 저 올곧은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저 아이는 허풍으로 저런 편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있었다. 카게야마 너머 보이는 저 칠흑같은 숲의 인영을 사진에 담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인화를 했을까. 츠키시마는 작게 한숨을 쉬며 생각을 해보겠다고 답을 내놓았다.

 

사방으로 하얀색에 둘러쌓인 카게야마를 찍는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아직은 몰랐다. 가슴이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그를 향해 웃었다.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며 츠키시마는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