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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모스

완벽한 순간

‘그런 순간이 있대.’

케이는 때때로 꿈을 꿨다. 생크림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구름이 느릿하게 지나가는 하늘이 유독 예쁜 날이었다. 아키테루가 황실의 견습 가이드로 선발 된 뒤 처음으로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아키테루는 어린 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웃었다. 케이는 형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황실에 들어간 형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완벽한 순간.’

‘그게 뭔데?’

‘모든 감각이 완벽하게 열리는 순간인데,’

케이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센티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가이드는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거기에 끌리게 된다는 거야.’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얼마 전 케이는 센티널의 안정화 수업 중 꽤 무리를 했다. 형을 따라 어서 자신도 황실 가이드가 되고 싶어 의욕이 앞섰던 탓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청각을 열었을 뿐이었는데, 머리가 쾅쾅 울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진짜야.’

하하 웃으며 아키테루는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케이는 꼭 형이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

아마 아키테루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는 절대 그래선 안 돼.’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고,

“싫은데요.”

지금의 케이는 생각했다. 츠키시마 케이는 눈앞의 상대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열 받는 김에 당장 나가라고 해준다면 더없이 반갑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황실에서는 능력 좋은 가이드가 밑도 끝도 없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황실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자신을 굳이 들인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일단 오긴 했으나 츠키시마는 매사에 비협조적으로 굴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럼 테러범들이 도시 중심부를 폭파시키게 냅두란 거냐?!”

“그런 말은 안했는데요.”

“네가 가지 않겠다는 말이 그런 말이지!”

“저 말고도 많이 가잖아요?”

죽으러. 츠키시마는 그 말을 뱉으려다 그만두었다. 제가 아무리 건방지게 굴어도 넘어간다지만 이건 황실모독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아닌가. 앞의 늙은이가 무어라 큰 소리로 계속 말했지만 츠키시마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 갔다간 어차피, 

‘...형은 괜...찮아.’

그 꼴만 날 테니까. 츠키시마는 또 떠오르는 기억에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 날 자신의 형은 황실의 명으로 테러를 막으러 나갔고 거기서 한 센티널의 폭주를 막으러 애썼다. 결과는 어땠지. 실려 온 형의 모습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고 어머니는 울고 또 울다가 지쳐 쓰러졌다.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됐고 가이드로서의 삶도 끝이었다. 왼쪽 눈의 시력은 바닥을 쳤다. 그게 모두 한 사람 때문이었다. 스무 명의 가이드 중 반을 죽이고 나머지 반의 삶을 망쳐놓은 것은. 아키테루가 그렇게 되기 전부터 그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왕의 능력을 가진 제왕, 카게야마 토비오. 한 때는 그의 가이드를 동경하기도 했다. 두려운 게 없었던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아키테루가 말했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센티널’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게 위대한 게 아닌 무서운 존재였다는 건 제 형이 그리 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가지 않으면 반역으로 알겠다.”

“그럼 그냥 지금 잡아넣으시죠.”

츠키시마의 강경한 태도에 상대는 급격히 얼굴을 굳혔다. 대규모 테러가 예상되는 만큼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한 명의 가이드라도 더 보내야 했다. 테러범들에 의하면 공포때문이 아니었다.

“그럼 츠키시마 아키테루를 보내겠다.”

반사적으로 츠키시마 케이의 여유롭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네 대신 아키테루를 보내도 된다면, 멋대로 굴어라.”




***




빌어먹을 황실. 누군가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츠키시마는 말없이 속으로 동의를 표했다. 테러범들은 공화국을 연호하며 빨리 황제를 데려오라고 외쳤다. 미친놈들이었다. 황제가 문제가 아니었다. 카게야마 토비오. 그런 괴물이 황실의 직계혈족인데 그에 대항할 미친 괴물이 없는 이상 저들의 행동은 발악이자 버둥거리는 벌레와 다름없었다.  

“자유를 위하여!”

도시 중심부의 청사와 가장 큰 백화점의 옥상을 모두 점령한 무리들이 소리쳤다. 자유.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힘도 없는 자들이 자유를 외치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자신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뭐긴 뭐야 그냥 죽는 거지, 이런데서.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저들이나 자신이나 별다를 게 없었다. 그나저나 그 위대하신 제왕님께서는 왜 이리도 늦는 건지, 츠키시마는 슬슬 기다림이 지루했다. 어차피 죽거나 병신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일 운명인데 늦거나 빠른 게 뭐가 대수일까. 그리 생각하니 부러 형을 피했던 스스로가 조금 우스웠다.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이었다. 그때였다.

“우릴 우습게 아는 거야? 어!? 황제를 데려오라고!”

가장 선봉에 있던 남자가 웬 여자의 멱살을 잡고 옥상 난간 앞에 서게 만들었다. 츠키시마는 눈을 가늘게 떠 낯익은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예전에 황실에서 보았던 어느 장관의 딸이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등 뒤로 총구를 들이밀며 말했다.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으면 이년을 죽이겠다!”

여자만 불쌍하게 된 일이었다, 고 생각했을 때였다. 쾅, 소리가 났다. 남자가 들고 있던 총으로는 도저히 날 수 없는 소리였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츠키시마의 옆에서도, 건물 위에서도. 난데없이 바람이 몰아닥쳤다. 인위적인 것이었다. 츠키시마는 몸을 버티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하늘이 흐릴 만큼 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아니 여자가 올라 서 있던 난간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카게야마 님이다!”

뒤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위에 인질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사람인 듯 했다. 츠키시마는 그의 펄럭이는 검은 옷자락을 보았다. 황실의 S급 이상의 센티널에게 주어지는 복장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온통 까만색으로 뒤덮인 제복이었다. 자세히 볼 겨를도 없었다. 일은 그가 나타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아니, 정리되었다. 단발마가 끊이지 않았다. 건물 아래로 시체들이 떨어졌다. 소리를 지를 여유는 테러범이 아닌 이들에게나 주어졌다. 여자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공포와 경외가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테러범들과 대치하며 기다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츠키시마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학살하는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 있대.’

도망칠까.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뒤로 돌아서려면 지금밖에 없다고.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일도 뒤로 물러서는 일도 제 뜻처럼 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감각이 본능적으로 그를 좇는 것 같았다. 

‘모든 감각이 완벽하게 열리는 순간인데,’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츠키시마의 옆에서 황실을 욕하던 이는 이미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갈증에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이게 갈증일까. 츠키시마는 끊임없이 생각하려 애썼다. 성대가 말라가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누군가가 계속해서 지워나가는 듯 했다. 그때 카게야마 토비오가 뒤로 돌아서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 했다. 아키테루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센티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가이드는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거기에 끌리게 된다는 거야.’

츠키시마를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케이.’

아키테루의 말이 맞았다.

‘너는 절대 그래선 안 돼.’

점점 흐려지는 시야에도 츠키시마는 카게야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츠키시마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심장이 큰 소리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가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카게야마의 모습과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츠키시마는 킥, 소리 내 웃었다. 형도 이 순간을 겪었던 걸까. 츠키시마는 가끔 허공을 바라보는 형의 시선의 의미를 깨달았다. 카게야마의 손끝이 뒤로 넘어가는 츠키시마의 몸을 붙잡은 순간 그 손을 츠키시마의 손이 다시 붙잡았다.

“...어이, 왕님.”

카게야마가 다시 고개를 들어 츠키시마와 시선을 마주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저를 바라보는 어두운 푸른 시선에 츠키시마가 카게야마의 손을 붙든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카게야마의 거대한 힘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 힘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너덜너덜해지는 것만 같았다. 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절대 그래선 안 돼.’

아키테루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하지만, 형. 츠키시마는 영원히 일어서지 못할 형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미, 늦었어.

“츠키시마 케이야.”

재미없이 굳어있던 카게야마의 얼굴이 변해가는 것을 비추던 츠키시마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츠키시마는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다, 라는 말이 어렴풋이 들린 것도 같았다.